마취제 덕분에 만난 아름다운 환각의 세계에서 돌아오자마자 탈구 정복술 상태를 확인해야한다며 엑스레이실로 또 끌려갔다. 응급실로 다시 실려오니 탈구와 비골 골절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너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리던 인턴 말고 다른 의사가 저녁에 당장 수술을 하게 될 것 같으니 입원실로 이동하게 될꺼라고 했다.
수술 한 번 더 한다고 실적 오를 일도 없는 프랑스 종합 병원 의사가 수술을 하자는데 굳이 반기를 들 이유는 딱히 없었다. 코로나같은 전염병 관리는 이렇게 헤메도 사회 보장 제도는 꽤 잘 되어 있어서 국가 보험과 월 몇 만원 대의 사보험만 있으면 내 돈이 들어갈 일도 없다. 다만 집도 먼 여행지에서 갑자기 수술을 받자니 한심해진다.
제 자리를 찾은 발이 달린 왼쪽 발목은 여전히 아프지는 않았지만 1mm라도 움직였다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. 중환자 마냥 이동식 침대에 실려 입원실로 들어갔다. 몇 시간 째 대기실에 버려져 있던 신랑도 다시 만났다. 무슨 일이 있어도 무덤덤한 신기한 성품의 신랑은 근처 호텔로 옮겨올테니 여기서 수술 받으라고해도 아무래도 이래저래 불편할 것 같다.
응급실에 도착해서 찍은 엑스레이와 탈구 정복술 후 촬영된 엑스레이를 가지고 처음 보는 세번째 의사가 입원실로 들어왔다. 사고 직후의 상태로는 수술을 하는게 맞는 거였지만 정복술이 꽤 잘된 편이라 굳이 여행지에서 급하게 수술하는 대신 일단 발목골절 비수술 치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엄청난 희소식을 전했다. 대신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가까운 종합 병원 정형외과에서 꼭 다시 검진을 받으라고 신신당부했다.
깁스와 함께 집안에 처박혀 있던 동안 발목 골절의 수술 / 비수술이 어떤 기준으로 나눠지는지 궁금해하다가 아래 그림을 보고 살짝 이해한 느낌을 받았다. 당연히 안 당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골절 사고였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, 허술하나마 공부 한번 해봤다.
Danis-Weber 이라는 이름의 이 분류법은 발목 관절 기준 골절의 위치와 인대의 손상에 따라 세 가지 타입으로 발목 골절을 구분한다.
A Type : 발목 관절 아래 쪽에 위치한 골절.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골절로 평가되어 추가 인대 손상이 없다면 발목골절 비수술 당첨.
B Type : 발목 관절 라인에서 출발해 사선형으로 부러진 골절. 정강이 뼈와 종아리 뼈를 연결하는 인대가 같이 끊어진 경우가 많다. B 타입은 인대 손상 여부와 골절 자체의 안정성을 보고 수술 / 비수술이 결정된다.
C Type : 발목 관절 라인 위로 위치한 골절. 정강이 뼈와 종아리 뼈를 연결하는 인대가 함께 끊어지면서 안정성을 잃게되는 C 타입은 거의 수술 확정이다.
초보 Tip 1 같은 비골 뼈라도 중간 부분이 부러지는 경우는 따로 수술을 안 하는 건 물론 심지어 어긋난 상태로 그냥 두는 경우도 있다. 발목과 무릎 관절 근처가 아닌 한, 비골보다는 그 옆에 있는 두꺼운 경골에서 대부분의 체중을 지탱하기 때문이라고.
골절의 위치만 보면 나는 C 타입으로 수술이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. 하지만 얼떨결에 끌려간 병원에 입원까지 한 날, 이런 걸 알았을 리가 없다. ‘여행지에서 급하게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다’고 한 걸 듣고 싶은 대로 해석했다. 쓸데없이 해맑게 수술은 그럼 안 하는 거구나하며 좋아했다. 세번째 의사가 바로 깁스를 해주겠다고 하더니, 처치실같은 곳에 데려가지도 않고 입원실 침대에서 바로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통깁스를 만들어준다. 무릎을 어정쩡하게 굽힌 상태로 왼쪽 다리를 감싼 이 어머어마한 깁스는 그냥 누워있는 것부터 힘들게 만드는데 수술을 안 한 상태로는 이걸 심지어, 무려, 최소 45일동안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.
초보 Tip 2 발목 골절 비수술 치료 시에는 수술로 단단히 고정해둔 것보다 아무래도 안정성이 떨어지니 이렇게 무식한 허벅지 통깁스를 권장한다고 한다. 일상 생활에서의 불편함을 논하자면 며칠 밤도 꼴딱 새울 수 있지만 그래도 보기보단 가볍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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